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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6

망상극장/미분류 2020. 8. 12. 20:41

그 애는 그 어린 것을 안고 무릎으로 바닥을 딛고 서있었어요.

우습지 않아요?

저도, 보통이었다면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았을 것이 무릎을 꿇고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단 말이에요. 그런 그 애에게 어떻게 말하겠어요. 네가 안고 있는 그것은, 그 핏덩이같은 것은 이미 죽었다고 말해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죽은 핏덩이를 안고있던 그 애의 눈이 아직도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아요, 선생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라던 그 눈이.... 지금도 꿈에서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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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꽃양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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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4

망상극장/ 팬픽 2020. 6. 6. 14:04

글쎄, 언제부터였는가를 생각하기에는 그 아무래도 좋다는, 이젠 제대로 된 표정도 잊은듯한 표정이 너무나 오래되었었다. 물론 아무렇게나 굴어도 되는 이였다. 연습을 빙자해 이겨먹어보겠다고 달겨드는 디이를 지리한 표정으로 가볍게 꺾어내는 것이 그였다.
사실 이변을 눈치채는 것이 너무도 늦었다. 언제나 바쁘던 그가 이렇게 오래, 우리의 훈련장을 벗어나지 않았을 때 우리가 눈치를 먼저 챘어야 했다. 그 놈의, 빌어먹을 성장의 기회랍시고 눈치도 없이 덤벼든 우리가. ..아니, 그것을 묵인한 내가, 몹시도 멍청했다.

끼니를 거르고, 술을 양껏 마시고, 다음날 동도 트지 않은 새벽부터 구보를 하고, 눈 밑이 검게 꺼지도록 잠도 자지 않고, 그런, 뼈만 남은 몸으로 견습생들을 훈련시킨다.
밀레시안의 경이를 안다. 비단 외모를, 나아가 성별을 그리도 쉬이 바꾸어대는 그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가 던바튼 근처에서 공간을 찢고 튀어나왔을 때 그는 혈혈단신으로 싸우고 있었다. 멍청해보일만큼 우직한 이였다. 그가 영웅이었다. 그런 부상을 입고도 그는, 제 몸의 안위조차 걱정하지 않은 채로 우리 앞을 가로섰고, 사도가 휘두른 팔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독하고, 또 미운 소리일지 모르나 기사단이 알아야할 것 중 하나는 밀레시안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영생한다. 대지 아래서 안식하는 일 없이 세계에 선다. 모리안의 가호를 받던 자, 이제는 신의 힘을 거머쥔 자, 그런 이를 지키기보다는, 그를 앞세워 목숨을 부지하라고. 소수파이긴 하나, 그들은 죽지 않으니 그래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다수파도 직접적으로 그런 발언을 하지 않을 뿐, 교단 아래 선 그에게 은근히 그런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타인을 지키는 방패를 익혔을 때, 그랬다.

신의 이름 아래, 굳건한 방패이기를.
신의 이름 아래, 벼려진 검날이기를.

비단 우리뿐 아니라, 어느 누가 그것을 바라지 않았나.
모든 투아하 데 다난은, 그래. 몹시 영악했던 것이다.

우리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않던 그이기에, 눈 한빈 깜빡일 사이에 온 에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 눈 앞에서 사라져버린 그를 우리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비통한, 처참한, 아니 그것보다 더한 권태로 으스러진 그의 입술매로 가느다란 뱀처럼 흘러나온 딱 한마디로 그는, 우리 눈앞에서. 양 눈을 가리고서야 겨우야 웃음지은 그는, 그 한마디으로 우리를 무너뜨리고는 사라져버렸다.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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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것이 좋았다.
뭐가 되었던, 아무튼 읽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날의 내 기억 중 제일 또렷한 것은 책에 대한 것이다. 거실 구석에 서있던 책장 아랫칸에서 뽑아낸 먼지 쌓인 책을 처음 펼쳤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코 끝에 그 먼지 묻은 종이 냄새가 스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손 끝에 감기는 종이의 약간 거친 질감이 좋았다. 책을 덮은 손에 얼굴을 묻었을 때의 뭉근한 잉크의 냄새가 좋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틀어, 한줄 한줄 읽어넘길 때마다 새로운 곳으로 날 잡아끄는 종이묶음에게 나는 기어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 때부터 내 어린 삶은 독서 일변도였다. 진단만 받지 않았을 뿐, 훌륭한 활자 중독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책에 미쳐있었다. 너는 어렸을 때 참 어련했다고, 어느날 혼자서 글을 깨쳐 책을 읽고 있었다는 어머니의 증언조차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긴 그랬다. 어머니와의 제일 오래된 추억조차 책이 끼여있는 탓이니 나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낡은 책을 옆에 끼고 뒤뚱뒤뚱 어머니에게 걸어가, 그것을 펼치고 어머니에게 내밀었었다. 이게 무슨뜻이에요, 하고. 그때의 어머니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전을 찾아보라는 말만큼은 또렷하다.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에는 사전을. 내 어린 날의 모습은 그랬다.

그렇지만 한 가정에 있는 책이 그리 많을 리가 없다. 금새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어버리고, 새로운 책이 없어 같은 책을 계속해 읽어대고, 새 책을 갖고싶어 발을 동동 굴러대도 말도 안되는 독서량을 가진 어린 자식의 욕구를 죄 채워줄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방에 지역 도서관이 있었다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불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발을 들인 도서관은 내게 별세계였다. 천국이었고 신역이었다. 넓은 공간에 책장과 책장과 책장과 책장이 서있고, 그 모든 책장에 빼곡하게 책이 꽂혀있었다. 그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읽어도 된다는 그 현실은 나를 열광하게 만드는 것에 부족함이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 모든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이 내 얼굴을 외우기 시작했다. 개관이 8시라면, 다들 늦잠에 빠져있을 시간에 새까만 크로스백을 단단히 메고 개관시간을 기다려 인사하며 들어가고, 폐관인 7시의 문을 닫기 직전까지 한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끼니를 굶어가며 책을 읽어대는 어린 것의 얼굴을 못외울 리가 없지, 아무렴. 게다가 욕심스럽게도 올 때는 홀쭉하게 비어있던 크로스백이 터지도록 꾸역꾸역 책을 쑤셔박고 신이 나 뛰쳐나가서, 다음날이 되면 눈 아래가 쑥 꺼져 다음 책을 빌려가고는 했으니 말 다 했다. 믿을 수 있겠는가? 어느날부턴가 1층에서 두어번 마주쳤던 나이 많은 사서 선생님을 연말 도서관 독서왕 시상식에서 관장님으로 소개받았을 때의 충격은 꽤 어마어마했다. 아니, 그러니까 글쎄 나는 그냥 가끔 내 머리나 쓰다듬어주고, 사탕이나 하나씩 주는 좋은 사서님인줄 알았더니만, 세상에. 

 

 


 

오랜만에 썼다. 좋다. 공미포 1천자 1시간만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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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망상극장/미분류 2018. 8. 23. 03:26

그 연못은, 연못이라고 하기에는 크기가 너무 컸다. 으레 사람들이 연못으로 부르기에 다들 연못이라고 부를 뿐, 그 크기만 따져서는 연못이 아닌 호수가 더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사람들을 고집스럽게 그 것을 연못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흘러들어온 외지인이 저 호수는 이름이 뭔가요, 하고 묻기라도 하면 그들은 저건 연못이야, 하고 핀잔을 툭 주고는 더 이상 말도 않고 휘적휘적 가곤 했다.

 

연못보다 작은, 진짜 연못은 물, 로 불렀다. 그들에게 연못보다 작은 것은 연못도 아니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붙이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눌러앉은 그것은 어그러진 기준임에도 어색함조차 없다고, 설명하기조차 힘든 호수는 연못이라 이름 붙여져서, 이름도 없는 연못이 되어가고 있다. 아주 평범한 이곳에서 연못의 존재는 비일상을 상정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비일상이라 하면 나도 만만치는 않았다. 나는 외지인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외지인이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흘러들어와 오래도록 이 마을에 머물렀다. 하지만, 바깥에서 스며든 어머니는 그 마을의 사람이 될 수 있을지라도 나는 언젠가 이 자리에서 풀려나갈 실오라기 같은 존재였다.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품어주었지만, 자란 뒤의 떠난 나는 내가 다시 내 발로 돌아올 때까지 외지인이라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외롭게 자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 마을에 가진 기억은, 마을에 다닌 것보다 동네 할미들 품을 돌아다닌 것이 더 많았다. 할미들은 마을에 얼마 없는 작은 아이를 싸고돌았다. 치마폭에 싸여 있던 나는 어느 때는 우리 어머니보다 동네 할미가 더욱 어머니 같았다. 도시물 먹은 어머니는 흙빛으로 손을 물들이는 때가 많았고, 집에 돌아오면 누워버리기 일쑤였다. 피로한 어머니 대신, 나는 읍내의 학교를 다녀오고 난 뒤에는 늘 할미들의 품에 안기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나는 그것을 이상하다 여기지 못했다.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기억속이 할미들은 갈라진 손등과, 흙냄새와, 손톱 밑에 까맣게 끼인 흙때로 기억에 남아있다. 사실 할미들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햇살이 그녀들의 이마에 깊은 주름을 팠을지 누가 아는가. 사실은 젊은 이였을지 누가 아는가.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할머니, 할머니, 하며 쫓아다녔고 그들은 그냥 나를 들어 안고 품에 품어주었다. 그 미소가 다시 없이 푸근했다.

 

할미들은 속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나씩은 품고 있었다. 할미들 품을 돌아가며, 돌아가며, 몇 번이고 귀를 기울이다 그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고 옷섶을 잡고 졸라대면 할미는 젊었을 적 일이었지, 하며 저 먼 어딘가로 시선을 던졌다. 그 젊었을 적이, 자신의 젊었을 적인지 혹은 그 누군가의 젊었을 적인지는 입을 대지 않았다. 으레 그래왔기 때문에 나는 익숙한 자세로 할미의 품에 안겨 입에 사탕을 물고는 했다. 그럼 할미들은, 조곤조곤 시간을 되씹으며 애정 어린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오랜 시간동안 눈앞에 선하게 그려주던 기억은 날이 갈수록 온전히 내 기억이 되어가는 듯이 생각되었다. 하지만 어느 기억이든 흐려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기억 너머로 사라져 가는 것, 귀퉁이 버석버석 으스러져 가는 것,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이 문드러져가는 기억들 사이에서 나는 연못의 이야기를 유난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래된 무엇인가가 늘 그렇듯이, 그 연못은 건드리면 바삭바삭 부서져 내릴 것 같은 푸르스름한 이야기를 안고 있었다. 물빛인지, 아니면 하늘빛인지 모를 푸른색으로 물들인 연못은 그 위에 구름 몇 개를 띄우고 잔잔히 있었다. 그녀는 그 잔잔함 위에 동그란 돌을 던지고, 퍼지는 동심원이 어디까지 퍼져나가나 찬찬히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대뜸 던지는 물음은 엉뚱했다.

 

연못에는 뭐가 살고 있을까?

 

발끝으로 찰방찰방 물을 튀기며 한숨같이 묻던 그녀는 일주일 뒤 팔리듯이 시집을 가야했다. 아득한 눈으로 연못 너머의, 몇 개고 몇 번이고 넘어가야할 재를 세며 그녀는 내게 물어왔었다. 그럼 나는 무슨 실없는 소리냐며 웃음을 짓고, 그녀는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다시 쳐다보며, 말해봐. 연못, 우리 연못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하고 묻는 것이다.

 

같이 자라온 나는, 내내 함께 붙어 다니던 우리는 이 질문을 몇 번 하고 몇 번을 대답했던가. 도대체가, 몇 번이고 주고받는 그 대화가 질리지도 않는지. 나는 슬며시 생각해보는 척 하다가 대답하는 것이다. 이 대화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듯이 잔뜩 귀찮은 투로. 내가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연못이니까 산신령이 살 거야.

 

원하는 대답을 들은 그녀는 슬쩍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여 나를 쳐다본다. 유난히 그 얼굴이 우울해보인 것은, 하고 생각해보다가, 에잇, 쓸데없는 생각이지 하고 벌레를 쫓듯 고개를 휙휙 저으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서는, 그녀는 또 방긋이 웃는다. 그 미소가 반가워서 좋다. 그 미소는 변한 적이 없다. 기억 속에서 빛이 바랠지언정 그 미소는 변하지 않는다.

 

여긴 산이 아닌걸.

 

그럼 나는 콧방귀를 뀌고는 올라있던 돌덩이 아래로 뛰어내린다. 발밑의 흙은 한참동안 계속되어버린 가뭄으로 팍팍하다. 입 하나 줄이겠다고 내보내는 그녀는,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나는 툴툴 대답하는 것이다. 괜히 그런 거나 물어본담? 이제 곧 못 볼지도 모르는데, 하고 결국 생각해버린 나는 잔뜩 골이 났다. 평소보다 더 독하게 말을 뱉고는 뒤를 돌아가 버렸다.

 

아님, 산신령님들 집합소겠지. 온통 재뿐이잖아. 전부 모여 마작이나 하시라지. 가자.

 

내가 버럭 소리를 질러 재차 그녀를 부를 때까지, 그녀는 또 오래오래 연못을 보고 있었다. 가뭄에 쪼그라든 연못은 마을사람들이 퍼다 써서 쪼그라들었겠지. 그래, 입 하나 줄이라고 멀리 가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 못 건넬망정 퉁명스레 이야기한 것을 나는 후에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연못으로 몸을 던졌다.

 

결혼을 할 날 새벽이었다. 몰래 그날 신을 꽃신을 손에 들고 그녀는 허겁지겁 흙발로 뛰어갔을 것이다. 신발 바닥에는 흙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 알려준 것이었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듯이 신발코를 마을 쪽으로 돌려놓고, 내가 자주 앉아있던 그 바윗돌 위에서,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연못에 그녀는 꼴깍 몸을 던졌다. 허겁지겁 뛰어 도착한 연못의 돌 위에는 가지런한 꽃신, 손대면 이제 막 벗은 듯 따스함이 느껴질 것 같은, 꽃신과, 산신령들에게 화투 가르치러 간다는 정갈한 글씨만이 남아있었다. 남기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 그녀는 그 추위에 곱아가는 손으로 눈 위에, 봄이 오기도 전에 사라질 글씨만 남겨놓고 갔다.

 

꽃신을 남겨놓고 간 아이가 꽃신을 두고 간 곳은 꽃이 필 수 없는 돌덩이 위였다. 눈 위에 손으로 그려놓은 글씨도 봄이 오자 그야말로 눈 녹듯이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이제 눈도 녹았으니 살풀이굿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미는 시체를 건지지 않았다. 그 부분에 만큼은 더없이 완강했다. 해쓱하게 패인 뺨과, 부스스한 머리로 방 안에 틀어박혀있다가도 어느 날은 훌훌 털고 일어나 마을을 돌아다니고는 했다. 실성한 듯 실성하지 않은 듯 그녀는 홀쭉한 뺨으로 비실비실 미소를 짓고는 했다. 하지만 그 눈은 번쩍번쩍하니, 사람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제 딸 손대지 말라는 짐승 같다고 수군거리는 말도 심심찮게 들렸다.

 

결국 나선 것은 마을 제일로 나이가 많은 할미였다. 여보게, 자네 딸 춥지 않은가. 겨울에 바로 건져주지 못한 것은 미안하지만, 이제라도 데려와서 땅에 재워줘야지. 조곤조곤, 입을 오물대며 이야기하는 할미에게 어미는 심기 불편한 것을 드러내기 힘들었지만, 흉흉한 기운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녀가 치맛자락을 꽉 쥐고서, 손가락 마디마디 하얗게 번지도록 꽉 쥐고서 간신히 내뱉은 말은 무척이나 유했다.

 

제풀에 가르치다 지치면 올라오겠지. 제까짓 게, 에미한테도 이겨 못한 게 누굴 가르치남.

 

그 말만 툭 던지고 뒤돌아 성큼성큼 나가는 어미를, 아무도 불러 세울 생각도 못했다. 누군가가 한두마디 불평을 늘어놓으려고 했지만 곧 입을 꾹 다물었다. 그 기세는 차마 붙잡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품고 있었다.

 

꽃신을 남겨놓고 간 아이가 꽃신을 두고 간 곳은 꽃이 필 수 없는 돌덩이 위였다. 그 자리에는 늘 꽃신이 있었다. 날이 가고, 주가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고, 계절이 가고. 비바람에 닳아빠질 즈음 되면 늘 꽃신은 새신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어미는 늘 그 자리에 꽃신을 두었다. 날이 가고, 주기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고, 계절이 가고. 꽃신이 비바람에 닳아빠질 즈음에는 장봐오는 어미의 등짐 옆에는 고운 꽃신이 달랑달랑 매달렸다.

 

내 딸 맨발로 돌아오진 말아야지. 또 겨울이면 어찍해.

 

어느 누가 그 꽃신을 왜 사오느냐 눈치 없이 물으면, 주름진 눈가를 착착 접으면서 어미는 웃음을 지었다. 한숨 같이, 바람 같이, 흘러가며 그렇게 대답하는 말에 싣는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던가.

 

가슴 한 켠이 아릿하도록, 볼 때마다 검버섯이 피는 손등과 눈가와, 주름져 닳아가는 어미는 자신의 아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눈물 나도록 젊은 날의 그와 흡사했다. 더없이 쓸쓸한 눈빛으로, 하지만 더없이 사랑하는 눈빛으로 자신의 아이를 읊을 때면 나조차도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을 겪었다. 겪었다고, 검버섯이 피는 할미는 내게 이야기를 했다. 그런 말을 하는 할미의 눈가에는 글썽글썽 눈물이 맺혀있을 때가 많았고,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으레 울었다.

 

지금 나는 연못에 와있다. 할미들은 많이도 갔고, 이제 나는 할미들에게 아주머니, 하고 불러야할 나이가 되어서야 이 마을에 돌아왔다. 하지만 어렸을 적의 기억이란 그리도 오래오래 남아있었다. 나는 호수 같은 연못인지 연못 같은 호수인지 나는 그것이 품은 이야기가 눈물 나도록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내키는 날엔 바늘 없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며칠을 몇 날을 거기에 앉아있었는지. 머리가 굵어져도 풀벌레 개구리 숨죽일 줄 모르고 왁자히 떠들어대는 연못가에서 나는 몇 시간이고 미친놈처럼 떠들어대었다. 사랑하는 친구야 너는 어떻게 지내웁고 있느냐, 연못에 죽은 처녀야 너는 아직도 화투를 치고 있느냐. 비일상의 세계에서-일반적인 상식의 세계와 줄을 그어 놓은 듯한 연못가에서 난 계속 중얼중얼 무엇을 하였던가.

 

시간을 줄줄 쏟아 내다보면 나는 갖가지 생각만 둥실둥실 떠올렸다.

 

꽃신을 신고 쪽을 찌고 고운 신부복 차려입고 가채를 올리고 연지곤지 찍고 나면 그녀도 고와서 참으로 환했을 것이다. 싫은 이에게 시집을 가도 꽃단장하고 피어나야했을 그녀는 참담하게 아름다웠으리라. 부서지는 마음을 또닥또닥 분칠로 덮으며 그녀는 방긋이 웃었으리라.

 

뛰어든 그녀와 꽃 같은 그녀가 어느 쪽이 옳은가는, 꽃신을 신고 뛰어든, 혼자서 몰래 할 수 있었을 꽃단장을 하고 떠난 그녀를 위해 판단하지 않았다.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사랑받고,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더냐. 나이가 이쯤 된 후에도 나는 아직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조차 배우지 못하였다. 단지 내가 해야 할 것은 아무도 위해주지 않는 그녀가 돌아올 길을 위해, 사랑받았던 그를 위해, 이제 아무도 얹어놓지 않는, 바윗돌 한 켠에 꽃신 한 켤레를 두고 오는 것뿐이다. 당신은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고, 사랑받고 있다고, 말해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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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별다른 일은 없는 날이었다. 외주 작업에다 주중에 밀린 일이 많아 사무실은 숨막히도록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난 밤을 꼬박 새운 탓인지 머리가 띵했다. 요컨대 평소와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아예 이상한 날도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휴게실을 독점해 쓰러지다시피 소파에 기대 있던 난 노크 소리에 연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고개를 들었을 때 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 실례해도 될까요?”

 

문을 열기 위해서였던지 입에 문 컵을 다시 손에 들고 있는 ‘나’는 의외로 부끄럼을 타는 듯 보였다. 며칠을 일에 찌들어 완전히 지쳐버린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상당히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멍하니 있다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발끝으로 톡 차서 문을 닫고 들어와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놀란 내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 그녀는 나를 향해 또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짓기에는 굉장히 포근해보이고 낯간지러운 미소였다.

 

“이거, 2층 자판기 밀크커피에요. 마셔요.”

“아.”

 

얼빠진 소리를 내고선 난 허겁지겁 커피를 받았다. 이렇게 작업이 밀려올 때면 나는 설탕이 한소끔 더 들어간 듯한, 2층 자판기의 밀크커피 이외에는 입에도 대질 않았었다. 나랑 입맛도 비슷할까? 이 버릇은 누가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겉모습은 거울 속에서 내가 바라보던 나와 완전히 판박이였다. 내 맞은편에 앉은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누구?”

 

뭔가 기세에서 밀렸다. 제일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너무 얼빠진 모습으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나’는 눈을 나와 맞추더니 방긋 웃음을 지었다. 보는 내가 짜증이 날 만큼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미소였다.

 

“난 ‘나’에요.”

“……하?”

“난 ‘나’라고요.”

“내가 누군데요?”

“당신이요.”

“지금 당신, 당신이 나라고 주장할 참이에요?”

“정답. 나, 도플갱어거든요.”

 

어린 아이를 어르는 듯한 말투로 말을 건네는 그녀의 눈은 둥그스름하게 휘어졌다. 웃는 모습이 속을 이렇게 뒤집어놓는 것은 처음이었다. 홧김에 손에 꽉 틀어쥐고 있던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달콤한 인스턴트커피가 목으로 넘어가고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난 종이컵을 구겨 손에 꽉 쥐었다. 눈을 마주치자 ‘나’는 살풋 상기되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아, 그렇죠. ……안놀라요?”

 

내 무덤덤한 반응에 실망한건지 그녀는 시무룩한 모습이 되었다. 그녀가 들어올 때부터 눈치 챈 상태였지만 그녀는 내가 좀 더 놀라주길 바랬던 것 같았다. 그녀는 머쓱하게 약간의 놀라움이 어린, 하지만 어린 아이가 맘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처럼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놀라네요. 사실 좀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너무 담담하게 물어보니까 오히려 내가 기분이 이상해요.”

“내가 놀라고 당황해봐야 당신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은…….”

 

입을 열자 그녀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말을 가로막았다.

 

“네,네. 알았어요. 모든 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여라, 이거잖아요? 알고는 있지만 너무하네.”

 

……기분 나빠질 정도로 그녀는 내 생각을 맞추고 있었다. 아마 더 이상 그녀와 나의 차이점을 찾아보려고 해도 없을 것이었다. 그녀는 문득문득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며 나를 주시하고 있었고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실실 웃었다. 정체성을 부정당한 기분은 아무리 겪어도 적응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먼저 운을 뗀 것은 나였다.

 

“당신, 나 죽여야 하지?”

 

그리고 돌아오는 즉답.

 

“그래요. 난 당신을 죽여야 해요.”

“어째서?”

“당신은 고장 났거든요.”

 

그녀는 소파 등받이에 늘어져 천장을 바라보는 듯 했다. 그 탓에 첫단추를 풀어놓은 블라우스가 벌어져 목덜미에 남은 하얀 흉터가 드러났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멋진데, 저 것까지 똑같이 만들다니 정말 누가 봐도 ‘저게’ 원래의 내가 아니라는 것은 모를 것이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는 고개를 다시 나에게로 향했다.

 

“당신의 정확한 운명은 나도 잘 모르지만 남은 시간이 있는데도 그 몸의 당신은 조만간 죽어요. 그래서 내가 태어났죠. 난 당신의 대체품이에요.”

“태어났다기보다는 발생했다, 만들어졌다가 훨씬 자연스럽지 않아 당신?”

 

내가 신랄한 말투로 한껏 비꼬아대도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어요. 도플갱어의 교체 현상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몇몇 사람들은 곱게 끝나지 않고 도망가고 소문을 내죠. 만난 뒤에 죽었다는 건 그 사람은 도플갱어를 피해 도망쳤다가 실패했다는 거예요. 뭐, 피해봐야 소용없는 ‘운명’이니까요. 그래서 보통은 조용히 교체작업으로 끝나죠.”

“……그럼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죠. 누가 알겠어요?”

 

저런 말을 들으면 무척 기분이 나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무덤덤하다.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문득 내가 해보고 싶던 것이 있었던가 생각해보게 됐다. 맞다, 어느 순간부터 난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 때부터 이미 미래가 없었던 것일까.

 

“당신은 곧 죽어요.”

“그렇겠죠, 당신 손에.”

“뭐, 그렇죠. 당신, 사고 당해요. 옥상에서 낙사로. 하지만 ‘난’ ‘운 좋게도’ 가벼운 골절상으로 끝나요.”

“내가 당신 손에서 안죽는다면?”

“그럴 일은 없어요. 지금 잠시 피하더라도 난 당신이 있는 곳에 계속 쫓아갈테니까.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요.”


‘나’는 어디까지나 침착해보였다. 그녀는 자세를 바꿔 나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선택을 종용하는 얼굴을 피하기 위해 난 반대로 등받이에 늘어지게 기댔다. 어차피 결단을 내려야할 때였다. 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폈다.

 

“……가지. 이왕이면 날씨 좋으면 좋겠네.”

 

옥상에 올라가는 건 생각 외로 쉬웠다. 휴게실이 외진 곳에 있는 덕에 대부분은 잘 쓰지 않는 뒤쪽 계단으로 올라가 옥상 문을 열었다.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빛이었고 옥상으로 몇발 내딛자마자 때맞춰 비가 내렸다. 마지막으로 보는 하늘인데. 좀 더 밝은 빛깔로 맞아줘도 좋았을 것을. ‘나’는 나에게 다가왔다.

 

“죽어주세요.”

 

그리고 즉답.

 

“싫어.”

 

‘나’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의외로 맘에 드는 얼굴이었다. 내가 짓기는 싫은 찡그린 얼굴. 이번엔 내가 그녀가 지금까지 지어보였던 미소를 지었지만 얼굴이 뻣뻣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얼굴로 잘도 그런 미소를 지었다 싶었다. 시선이 느껴진다. 필시 ‘나’는 고개를 나로 향하고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날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야 해요. 이해한 것 아니었나요? 그렇지 않고서야 왜 여기에 올라오자고 한건가요?"

“……당신은 두 번째 나야.”

 

나는 ‘나’에게 한발짝 다가갔고 그녀는 내게서 두발짝 물러났다. 아마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으리라. 나는 비로 젖어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걷었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황이 어린 표정은 묘하게 날 우월감에 젖게 만들었다. 난 말을 계속했다.

 

“날 찾아온 ‘나’는 당신이 처음이 아니란 소리야. 알았어? 도플갱어.”

 

인칭은 좀 이상하지만 내 눈은 다시금 휘둥그레 뜨였다. 그녀는 파랗게 질린 듯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녀의 뒷말을 뺏었다. 빗소리에 그녀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처음에 나보고 죽어달라고 찾아왔던 ‘나’의 눈에 비친 나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별로 가슴이 아프거나 불쌍해보이지는 않았다. 하얗게 돋아있을 내 상처를 매만졌다. 그 때는 당황해서 저질렀던 살해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난간까지의 거리는 가까웠다.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했다. 그녀에게 다가가며 머리 속에는 그녀를 밀어야 한다는 생각만을 했다. 자살과 타살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죄책감은 필요 없는 감정으로 느껴졌다.

 

“당신과 나는 동일인물이야. 그렇다면, 당신을 내 운명에 대신 끼워넣고 내가 당신이 되면 그만인 것 아니겠어?”

“……!”

 

팔을 뻗어 그녀를 난간에 밀어붙였다. 난간 너머로 넘어가지 않으려 내 팔 밑에서 버둥대는 그녀의 체온이 고스란히 나에게 넘어왔다. 잡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녀는 나대신 죽어야하는 ‘소모품’이 되어줘야만 했다. 그녀가 내 팔을 움켜쥐었다. 눈이 마주치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화사하게 미소지어주었다.

 

“잘 가.”

 

그녀와 함께 떨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서 우리는 서로의 뺨을 할퀴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으며 사납게 덤볐다. 하지만 그 순간이 그녀와의 짧은 만남 중 가장 유쾌한 기분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묵직한 것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는 둔한 울림이 온 몸을 강타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희미하게 귓가로 흘려들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팠다. 너무 무리한 듯 싶었다. 잠시 눈을 붙여도 되겠지.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눈을 뜨자 나는 하얀 천장을 위에 두고 누워있었다. 어머니는 간이 침대에 앉아 계시다가 내가 깨는 것을 보고 허겁지겁 달려오셨다. 그리고 몰려오는 잔소리. 도대체 얼마나 무리를 했으면 옥상에서 정신을 잃어 떨어지느냐, 천운이 도와 가벼운 골절로 끝난 것으로 알아라. 그 잔소리들을 한귀로 흘려들으며 나는 그 때의 상황을 다시금 곱씹었다.

 

그녀는 내 밑으로 떨어졌고 이미 그 전부터 흐물흐물 녹아내려가고 있었다. 정신을 잃기 전까지 본 그녀는 빗물에 씻겨 사라져가며 일그러지고 부서진 눈동자로, 뭉그러진 입술로 끊임없이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난 살아남았다.

 

난 고장난 부품이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다. 앞으로 몇 번을 ‘나’가 나를 찾아올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난 곱게 죽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는 내 자신을 죽이고 살아남을 생각이었다. 운명은 잔인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보다 잔인해지면 그만인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순순히 당해주고싶지 않았다.

 

“엄마.”

 

다행히도, 지금은 하고싶은 일이 생각났다. 난 녹아내린 내가 지었던만큼 고운건 아니지만 방긋이 웃었다. 이번엔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나, 결혼 하고 싶어.”

 

-

 

2010년 11월 초에 수정 완료. 저작권은 나한테 있음.

크게 별다른 일은 없는 날이었다. 외주 작업에다 주중에 밀린 일이 많아 사무실은 숨막히도록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난 밤을 꼬박 새운 탓인지 머리가 띵했다. 요컨대 평소와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아예 이상한 날도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휴게실을 독점해 쓰러지다시피 소파에 기대 있던 난 노크 소리에 연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고개를 들었을 때 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 실례해도 될까요?”

 

문을 열기 위해서였던지 입에 문 컵을 다시 손에 들고 있는 ‘나’는 의외로 부끄럼을 타는 듯 보였다. 며칠을 일에 찌들어 완전히 지쳐버린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상당히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멍하니 있다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발끝으로 톡 차서 문을 닫고 들어와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놀란 내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 그녀는 나를 향해 또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짓기에는 굉장히 포근해보이고 낯간지러운 미소였다.

 

“이거, 2층 자판기 밀크커피에요. 마셔요.”

“아.”

 

얼빠진 소리를 내고선 난 허겁지겁 커피를 받았다. 이렇게 작업이 밀려올 때면 나는 설탕이 한소끔 더 들어간 듯한, 2층 자판기의 밀크커피 이외에는 입에도 대질 않았었다. 나랑 입맛도 비슷할까? 이 버릇은 누가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겉모습은 거울 속에서 내가 바라보던 나와 완전히 판박이였다. 내 맞은편에 앉은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누구?”

 

뭔가 기세에서 밀렸다. 제일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너무 얼빠진 모습으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나’는 눈을 나와 맞추더니 방긋 웃음을 지었다. 보는 내가 짜증이 날 만큼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미소였다.

 

“난 ‘나’에요.”

“……하?”

“난 ‘나’라고요.”

“내가 누군데요?”

“당신이요.”

“지금 당신, 당신이 나라고 주장할 참이에요?”

“정답. 나, 도플갱어거든요.”

 

어린 아이를 어르는 듯한 말투로 말을 건네는 그녀의 눈은 둥그스름하게 휘어졌다. 웃는 모습이 속을 이렇게 뒤집어놓는 것은 처음이었다. 홧김에 손에 꽉 틀어쥐고 있던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달콤한 인스턴트커피가 목으로 넘어가고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난 종이컵을 구겨 손에 꽉 쥐었다. 눈을 마주치자 ‘나’는 살풋 상기되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아, 그렇죠. ……안놀라요?”

 

내 무덤덤한 반응에 실망한건지 그녀는 시무룩한 모습이 되었다. 그녀가 들어올 때부터 눈치 챈 상태였지만 그녀는 내가 좀 더 놀라주길 바랬던 것 같았다. 그녀는 머쓱하게 약간의 놀라움이 어린, 하지만 어린 아이가 맘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처럼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놀라네요. 사실 좀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너무 담담하게 물어보니까 오히려 내가 기분이 이상해요.”

“내가 놀라고 당황해봐야 당신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은…….”

 

입을 열자 그녀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말을 가로막았다.

 

“네,네. 알았어요. 모든 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여라, 이거잖아요? 알고는 있지만 너무하네.”

 

……기분 나빠질 정도로 그녀는 내 생각을 맞추고 있었다. 아마 더 이상 그녀와 나의 차이점을 찾아보려고 해도 없을 것이었다. 그녀는 문득문득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며 나를 주시하고 있었고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실실 웃었다. 정체성을 부정당한 기분은 아무리 겪어도 적응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먼저 운을 뗀 것은 나였다.

 

“당신, 나 죽여야 하지?”

 

그리고 돌아오는 즉답.

 

“그래요. 난 당신을 죽여야 해요.”

“어째서?”

“당신은 고장 났거든요.”

 

그녀는 소파 등받이에 늘어져 천장을 바라보는 듯 했다. 그 탓에 첫단추를 풀어놓은 블라우스가 벌어져 목덜미에 남은 하얀 흉터가 드러났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멋진데, 저 것까지 똑같이 만들다니 정말 누가 봐도 ‘저게’ 원래의 내가 아니라는 것은 모를 것이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는 고개를 다시 나에게로 향했다.

 

“당신의 정확한 운명은 나도 잘 모르지만 남은 시간이 있는데도 그 몸의 당신은 조만간 죽어요. 그래서 내가 태어났죠. 난 당신의 대체품이에요.”

“태어났다기보다는 발생했다, 만들어졌다가 훨씬 자연스럽지 않아 당신?”

 

내가 신랄한 말투로 한껏 비꼬아대도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어요. 도플갱어의 교체 현상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몇몇 사람들은 곱게 끝나지 않고 도망가고 소문을 내죠. 만난 뒤에 죽었다는 건 그 사람은 도플갱어를 피해 도망쳤다가 실패했다는 거예요. 뭐, 피해봐야 소용없는 ‘운명’이니까요. 그래서 보통은 조용히 교체작업으로 끝나죠.”

“……그럼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죠. 누가 알겠어요?”

 

저런 말을 들으면 무척 기분이 나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무덤덤하다.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문득 내가 해보고 싶던 것이 있었던가 생각해보게 됐다. 맞다, 어느 순간부터 난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 때부터 이미 미래가 없었던 것일까.

 

“당신은 곧 죽어요.”

“그렇겠죠, 당신 손에.”

“뭐, 그렇죠. 당신, 사고 당해요. 옥상에서 낙사로. 하지만 ‘난’ ‘운 좋게도’ 가벼운 골절상으로 끝나요.”

“내가 당신 손에서 안죽는다면?”

“그럴 일은 없어요. 지금 잠시 피하더라도 난 당신이 있는 곳에 계속 쫓아갈테니까.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요.”


‘나’는 어디까지나 침착해보였다. 그녀는 자세를 바꿔 나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선택을 종용하는 얼굴을 피하기 위해 난 반대로 등받이에 늘어지게 기댔다. 어차피 결단을 내려야할 때였다. 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폈다.

 

“……가지. 이왕이면 날씨 좋으면 좋겠네.”

 

옥상에 올라가는 건 생각 외로 쉬웠다. 휴게실이 외진 곳에 있는 덕에 대부분은 잘 쓰지 않는 뒤쪽 계단으로 올라가 옥상 문을 열었다.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빛이었고 옥상으로 몇발 내딛자마자 때맞춰 비가 내렸다. 마지막으로 보는 하늘인데. 좀 더 밝은 빛깔로 맞아줘도 좋았을 것을. ‘나’는 나에게 다가왔다.

 

“죽어주세요.”

 

그리고 즉답.

 

“싫어.”

 

‘나’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의외로 맘에 드는 얼굴이었다. 내가 짓기는 싫은 찡그린 얼굴. 이번엔 내가 그녀가 지금까지 지어보였던 미소를 지었지만 얼굴이 뻣뻣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얼굴로 잘도 그런 미소를 지었다 싶었다. 시선이 느껴진다. 필시 ‘나’는 고개를 나로 향하고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날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야 해요. 이해한 것 아니었나요? 그렇지 않고서야 왜 여기에 올라오자고 한건가요?"

“……당신은 두 번째 나야.”

 

나는 ‘나’에게 한발짝 다가갔고 그녀는 내게서 두발짝 물러났다. 아마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으리라. 나는 비로 젖어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걷었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황이 어린 표정은 묘하게 날 우월감에 젖게 만들었다. 난 말을 계속했다.

 

“날 찾아온 ‘나’는 당신이 처음이 아니란 소리야. 알았어? 도플갱어.”

 

인칭은 좀 이상하지만 내 눈은 다시금 휘둥그레 뜨였다. 그녀는 파랗게 질린 듯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녀의 뒷말을 뺏었다. 빗소리에 그녀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처음에 나보고 죽어달라고 찾아왔던 ‘나’의 눈에 비친 나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별로 가슴이 아프거나 불쌍해보이지는 않았다. 하얗게 돋아있을 내 상처를 매만졌다. 그 때는 당황해서 저질렀던 살해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난간까지의 거리는 가까웠다.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했다. 그녀에게 다가가며 머리 속에는 그녀를 밀어야 한다는 생각만을 했다. 자살과 타살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죄책감은 필요 없는 감정으로 느껴졌다.

 

“당신과 나는 동일인물이야. 그렇다면, 당신을 내 운명에 대신 끼워넣고 내가 당신이 되면 그만인 것 아니겠어?”

“……!”

 

팔을 뻗어 그녀를 난간에 밀어붙였다. 난간 너머로 넘어가지 않으려 내 팔 밑에서 버둥대는 그녀의 체온이 고스란히 나에게 넘어왔다. 잡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녀는 나대신 죽어야하는 ‘소모품’이 되어줘야만 했다. 그녀가 내 팔을 움켜쥐었다. 눈이 마주치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화사하게 미소지어주었다.

 

“잘 가.”

 

그녀와 함께 떨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서 우리는 서로의 뺨을 할퀴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으며 사납게 덤볐다. 하지만 그 순간이 그녀와의 짧은 만남 중 가장 유쾌한 기분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묵직한 것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는 둔한 울림이 온 몸을 강타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희미하게 귓가로 흘려들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팠다. 너무 무리한 듯 싶었다. 잠시 눈을 붙여도 되겠지.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눈을 뜨자 나는 하얀 천장을 위에 두고 누워있었다. 어머니는 간이 침대에 앉아 계시다가 내가 깨는 것을 보고 허겁지겁 달려오셨다. 그리고 몰려오는 잔소리. 도대체 얼마나 무리를 했으면 옥상에서 정신을 잃어 떨어지느냐, 천운이 도와 가벼운 골절로 끝난 것으로 알아라. 그 잔소리들을 한귀로 흘려들으며 나는 그 때의 상황을 다시금 곱씹었다.

 

그녀는 내 밑으로 떨어졌고 이미 그 전부터 흐물흐물 녹아내려가고 있었다. 정신을 잃기 전까지 본 그녀는 빗물에 씻겨 사라져가며 일그러지고 부서진 눈동자로, 뭉그러진 입술로 끊임없이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난 살아남았다.

 

난 고장난 부품이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다. 앞으로 몇 번을 ‘나’가 나를 찾아올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난 곱게 죽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는 내 자신을 죽이고 살아남을 생각이었다. 운명은 잔인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보다 잔인해지면 그만인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순순히 당해주고싶지 않았다.

 

“엄마.”

 

다행히도, 지금은 하고싶은 일이 생각났다. 난 녹아내린 내가 지었던만큼 고운건 아니지만 방긋이 웃었다. 이번엔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나, 결혼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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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초에 수정 완료. 저작권은 나한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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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다시 보자


아이고 조잡해라


필치는 바뀌질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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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꽃양배추
,

"정지."

 

짜릿하게 등골이 울렸다. 목 뒤를 낚아채 끌어당기는 것 때문에 생각보다 꼴사납게 엎어졌는데. 다 봐버렸겠네, 라고 생각하며 정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피가 섞여 흘렀다. 입 안이 제대로 찢어졌는지 어쨌는지, 아까부터 불쾌한 피맛이 입안에 맴돈다. 짧은 시간의 자기 점검을 그만두며 그는 아예 누워버렸다.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라면 얼마든지 좋다. 아까의 그 무너진 모습은 답지않았다. 자조적으로 입꼬리를 비틀며 그는 당당히 선 그녀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지팡이 세례가 날아들었지만 생각보다는 아프지 않았다.

 

"리베레카, 머리는."

 

"잘랐다. 멍청아."

 

곧게 뻗은 지팡이의 머리를 단단히 틀어쥔 리베레카는 허전한 목 뒤를 매만졌다. 목 뒤에 찍힌 낙인. 그 것이 언젠가 자신을 삼킬 표식이라고 혹자가 떠들고 다녔다. 이제 겁먹지 않는다. 발을 앞으로 딛기 전 지팡이로 바닥에 원형을 그린 그녀는 지팡이 끝으로 원을 때렸다. 정우는 그 익숙하지만 생소한 광경에 잠시 멍해졌다. 그녀의 빛이 푸르러져있었다. 얼어붙은 파란색에서 밝디 밝은 녹색으로의 변화. 그녀의 심경에 무슨 변화라도 있었나?

 

"다시는 앞에 나서지말게나. 내가 뒤처리를 해줘야하지 않나."

 

빳빳하게 풀을 먹인 실크햇의 허리께에 감긴 붉은색 리본이 도드라진다. 연미복의 여성은 몸 주위에 튀는 스파크는 신경도 쓰지 않는듯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몰아치는 바람에 모자는 날려가고, 연미복은 타들어간다.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는 억지로 진 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녹색의 빛이 그녀를 휘감고 맴돈다. 아프게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고있었다.

 


-


판타지가 쓰고싶었던 모양이다.

난 예나제나 강한 여성이 좋다. 정확히는 독종에 악바리들이 좋더라. 

꼭 여자가 아니라도 상관없는데, 남자여자 안가리고 골고루 깨져 굴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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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얼굴에는 이제야 무언가를 만났다는 기쁨만이 충실했다. 마른 숨을 삼킨 그의 방아쇠는 귀가 튿어질듯한 굉음을 내고, 가벼운 퍼들거림만을 남기고 고라니는 붉은 피를 훌훌 뱉어내며 바닥으로 쓰러지고, 총을 거두고나서야 환히 웃는 그의 모습에 나는 오소소 소름마저 느꼈다.

다가선 고라니는 이제 경련조차 없었다. 울컥 쏟아지는 비릿한 피냄새는 산짐승을 모으니 조심하라던 아버지는 손칼을 뽑았다.

"무거우니 내장은 버리고 가자. 이미 모일 놈은 모일 계제니."

그리 말한 아버지는 덩쿨을 끊어와 옆 나무에 고라니의 뒷발을 묶고 거꾸로 매단 뒤, 망설임없이 그 하얀 털로 수북한 배에 칼을 꽂았다. 늘 벼려놓는 짧은 칼은 쉽게 고라니의 배를 갈랐다. 그 갈라진 배에서 끼쳐오는 더운 김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이 마지막 온기가 그리도 불쾌했다. 인상찌푸리는 니를 보며 아버지는 늘상 웃었다. 이제야 니 나이로 보인다, 하시며. 흔치않게 온화한 분이었다.

그렇게 배를 가른 고라니의 내장을 쏟아내고 가죽을 벗기고 아버지는 허벅다리 하나를 뚝 끊어냈다. 피맛이 비릿한 고라니의 근육은 아직도 더운 맛이 났다. 물컹한 창자를 들고 냇가로 가 얼음을 깬 찬 물에 그것을 차박차박 씻어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고기를 대충 쓱쓱 다져 불을 피우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라니의 내장에 고기를 넣고 구워 앉은 자리에서 먹던 투박한 창자구이는 짐승 비린내가 나는 조잡한 것이었지만 그것만큼 아버지를 선명하게 기억나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다.



-


이거 페북에 한번 올렸다가 굉장히 맘에 들었었는지 가끔 만날 때마다 이게 좋았다고 넌 언젠가 글을 쓸거라고 해주는 사람이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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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모래는 발이 아프도록 조이던 구두를 벗고허물을 벗듯이 하나씩 옷을 벗어던졌다옷을 벗겨낸다는 것에만 집중한쥐어뜯는 듯이 벗어내는 행동은 외설스럽다고 하는 것이 아까울 만큼 거칠고 투박했다.

이윽고 흰 나신이 드러났다정리조차 않고 아무렇게나 휙 옷을 집어던진 모래는 전화기만 집어 욕실로 향했다. Donna donna donna don……물이 닿지 않을 욕조의 적당한 곳에 휴대전화를 얹은 후 욕조의 수도꼭지를 돌리자 화끈한 기운이 훅 끼쳤다곧 뜨거운 물이 욕조를 바닥부터 메우기 시작했다발끝을 담그니 뜨거운 열기가 온몸에 달라붙는 기분이었다한숨 같은 탄성을 뱉으며 모래는 욕조에 몸을 담았다차가운 욕조 벽에 뺨을 대고 늘어지게 기댄 모래는 뜨거운 물이 밀려오는 것을 기다렸다차근히 올라오는 뜨거운 물은 늘 느렸지만차갑게 식어있던 욕조가 데워지는 기분은 그녀에겐 묘한 쾌감을 주고는 했다.


손끝을 물에 잠그려는 순간 찌르르 전화기가 울렸다인상을 찌푸리며 모래는 손을 뻗어 발신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한 후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디야.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넘어온다조그마한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욕조를 가득 메우고 웅울리는 듯 했다어디야그 말 한마디로 나른하게 풀려가던 모래의 몸은 바짝 죄여왔다모래는 고개를 젖혀 욕조에 누웠다따듯한 습기가 묻어난 손바닥으로 얼굴 반쪽을 문질러 마른세수를 하고는 모래는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바빠?

아니이제 집에 들어와서 욕실이야.”

어쩐지 목소리가 울리더라.

무슨 일이야?”

「…올래?


아주 잠시간의 뜸을 들인 후목소리가 은근하게 물어온다오지 않겠냐는 말은 그녀에겐 오라는 말과 다름없다하지만 이제야 물은 종아리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었다아직 그녀는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방금 들어왔는데.”
그래도.


모래는 웃음기 띤 목소리가 외려 건조하게 질척하게 귓속을 감아오며 자신을 종용하는 듯이 느꼈다하지만 저도 모르게 입꼬리에 웃음을 건 모양으로 모래는 자세를 바로잡았다눈을 사뿐히 감고는 작은 휴대 전화에 온 몸을 싣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다부옇게 번진 수증기의 온기가 온몸을 휩싸고 도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결국 모래는 언제나 하는 대답을 뱉고야 말았다.


알았어갈게근처에서 연락 주면 되는 거지.”

오래 걸려?

나 씻고 싶어서.”

와서 씻어도 될텐데.

싫어씻고 갈래.”

알았어연락해.


그의 대답을 끝으로 통화는 끊어졌다.

어느새 물은 다리를 완전히 집어삼키고 있었다모래는 전화기를 적당히 내려놓고는눈을 감고 욕조에 찰랑거리는 물에 완전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울컥울컥 쏟아져 들어오는 물소리와질끈 감은 눈꺼풀 너머로 비쳐오는 욕실 전등의 빛과흐늘흐늘 흔들리며 얼굴을 간질이는 머리칼들둥실 떠오르는 몸을 다시 물 아래로 잠그며 모래는 숨을 참는 것에 온전히 집중했다자신만이 남아있는 시간은 언제고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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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뽕

망상극장/ 팬픽 2018. 8. 7. 14:43

꼬르륵.

어린 표범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라스파 활화산꺼지지 않는 화산이 불타는 이곳은 비가 오는 때만이 숨을 돌릴 수 있었다하지만 화산의 돌벼락그 어느 구석에 틀어박힌 어린 것은 제 체온 하나 지키지 못하는 모양 그대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꼬르륵.

어린 표범은 제가 내쫓길 때를 떠올렸다가장 열심히 자신을 싸고 돌았지만 가장 매정하게 자신을 내친 어미에게 원망의 마음도 들지 않았다그나마 다행이라면 으르렁대지도 못했던어미 젖이나 빨며 그 품을 굴러다니던 새끼일 때 자신의 목을 물어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다자신을 숫제 귀한 보물마냥 끌어안고 살던 어미였다어떻게 그녀를 원망할 수 있을까.

꼬르륵.

제 배에서 나는 소리가 듣기 싫어 잠시 으르렁대던 어린 표범은 곧 그것조차 기운을 뺄 성 싶어 자신의 몸을 핥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축축하게 젖은 몸은 비가 그치고 나서도 한참이 걸려서 마를 것이다눈에 띄는 제 외모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작은 표범은 혀를 내밀어 자신의 흰 털을 핥았다내려 깐 붉은색 눈은 어둑한 곳에서도 노랗게 번득였다.

 

작은 표범은 알비노였다.

라스파 활화산화산재로 뒤덮인 검고 척박한 땅그 뜨거운 열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은 흔하지 않다땅에 납작 붙어사는 풀이나그 여남은 풀마저 온통 뜯어먹고야 마는 커다란 사슴벌레말라 비틀어진 그것을 물어뜯고 사는 들개 떼나들개를 채먹고 사는 가고일무엇을 먹고 사는지도 모를 발록 떼그리고 그 중간에 버티고 선 흑표범들은 그리 좋은 입지에 선 것은 아니었다그 증거로원래라면 단독으로 움직였어야 할 표범들이 무리를 지어 사는 것이다어째서 이런 말라비틀어진 땅에 자신들이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를 계제였으나 그들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었다다행히 개체 수가 많은 것은 아니라뿔뿔이 흩어진 여러 무리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제법 잘 살고 있었다그리고 작은 표범이 있던 무리는 불행히도 그리 큰 무리가 아니었다.

온 몸이 하얗게 물든 표범이 눈을 끔뻑이자마자 보고 듣게 된 것은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는 어른들이었다본능적으로 어미의 품을 파고들자 어미는 낳은 제 새끼 중에서도 제일 흰 그 아이를 품에 꾹 안았다.

태어난 지 보름이 되지 않아 어린 표범은 자신이 무리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사냥할 수 있는 전력이 늘어났다는 것보다이 검은 흙으로 뒤덮인 땅에서 희게 빛나는 것은 저 뿐이었다가고일에게 채여질 뻔까지 했다저를 내보내자고 목울음을 울리는 무리에게 제 어미는 이 애가 젖을 떼기만 하면 내보낼 터이니 더 이상 말을 떼지 말라 했다그리고 그만큼 어린 표범에게 얹힌 연습은 혹독했다그리고 정말로 젖을 떼자마자 어린흰 표범은 아무도 오지 않을 먼 외곽으로 쫓겨난 것이다.

 

꼬르륵.

제 털을 다 고르고 먼 끝을 바라보던 표범의 눈에 희뿌연 뭔가가 걸렸다저가 잘못 본 것인가 해서 눈을 비비고꿈쩍인 뒤 다시 보아도 저 먼 곳에서 보이는 흰색은 또렷했다온몸의 털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사냥감이다!

 

스스로 잡을 수 있는 작은 사냥감은 흔치 않다맛으로 고르기엔 배부른 소리라 지금까지는 사슴벌레나 뜯으며 살았지만저 하얀 털뭉치가 만약 고기라면 오랜만에 먹는 별미라는 소리가 된다그야말로 온 몸의 털이 후드득 뒤집히는 기분이었다고기고기절로 입에 침이 고이고온 몸이 들썩이는 즐거운 생각고기다!

하얀 표범은 조용히 몸을 낮추고 천천히아주 천천히 다가섰다머리 속은 저 작은 짐승의 목을 물어 부러뜨릴 생각으로만 가득하지만 그것은 행동으로 보여서는 안된다축축히 젖어내린 빗방울이 지금만큼 반갑기 어렵다자신의 기척도냄새도 완벽하게 지워내 줄 빗물에 몸을 흘리며 조심스레 표범은 표적에게 다가갔다.

못 먹고 잠 못 자 마구 상해버린 자신의 흰 털과는 차원이 다른윤기 자르르 흐르는 흰 털의 작은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또 침이 꿀떡 넘어간다간에 기별이나 가겠나 싶은 크기였지만 특식 이상은 될 터였다제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는지 흰 고양이는 자기에게 등돌린 그대로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하나잘 먹겠습니다-!

 

달려든 그 순간 눈앞에 별이 번쩍 튀었다정수리를 뭔가로 찍혀버린 탓에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어 흰색의 털은 흙먼지에 더러워졌다처음 듣는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흰색 표범?’

 

고개를 흔들며 비척비척간신히 몸을 일으키자니 뭔가가 온 몸을 꽉 눌러 잡았다몸을 뒤틀어 그것에 벗어나보려고 해도 힘은 점점 더 강해질 뿐이었다허리께와 목 뒤가 잡혀 씩씩대는 중에 문득 든 생각은아까 그 고양이가 어떻게 날 누르고 있냐는 의문뿐이었다.

 

꼬맹이.”

누가 꼬맹이야!”

 

목울대를 한껏 울리며 험악하게 울부짖자 누르는 힘이 한층 더 강해진다그것에 반항해봐야 제 몸에 더 아프기만 할 것 같아 얌전히 당하고 있자 아주 조금그 누르는 힘이 약해졌다.

 

너 표범이니?”

보면 모르겠어?”

난 흰색 표범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러지.”

나도 나말곤 본 적 없어!”

가족은?”

없어!”

덤빌 거야?”

 

그 한마디에 그 작은 머릿속이 핑핑 돌아갔다덤빌 거냐고아니덤벼봐야 못 이길텐데하지만 방심한 것을 노리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다가도 이 힘빠지고 배고픈 몸으로는 못이길 것 같다.

 

덤빌거냐고 물었어.”

아니.”

그럼 놔줘도 되니?”

아프니까 빨리 놔 줘.”

 

상냥하게 야옹대는 목소리가 묘하게 짜증난다이윽고 목 뒤에 눌려있던 압력이 사라지자마자 몸을 털고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나려던 작은 표범의 코에 구미 당기는 냄새가 스쳤다휙 고개를 돌리자이상하게 생긴 것이 있었다엄마가 피하라던먼 발치에서 딱 한번 보았던 인간이라는 것의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것에서는 아까 맡았던 고양이와 똑같은 냄새가 났다머리(로 짐작되는 것위에 삐죽하게 솟은 귀와손발의 끝에 보이는 흰 털과 도톰한 발바닥 살이 아니면 인간이라고 말해도 충분해 보였다온몸에 털이 부족해 보이는 대신 머리에는 자신과 같은 흰색 털이 길게 자라나있었고민둥한 몸에는 이상한 얇은 것을 두르고 있었다그리고 그 아래에는 배죽하게 꼬리도 솟아 있었다.

물론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다작은 표범의 신경은 그 앞의 커다란 고깃덩어리에 온통 집중되어 있었다저거 하나만 먹어도 사나흘은 충분해 보일만큼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그야말로 하늘에서 하고 떨어진 것이다돌아선 발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한 모양 그대로 고개만 돌려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니 고양이같은 것이 말을 걸었다.

 

배고프니줄까?”

 

준다고 하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작은 표범은 온몸을 날려서 그것에 입을 들이댔다하지만 그것이 입에 닿기 전에 고기는 뒤로 잡아빼지고자그마한 앞발에 자신의 턱이 붙들렸다자신만만한 푸른 빛의 눈동자가 자신의 불그레한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어째 몸이 움츠러드는 기분이 들어 몸을 뒤로 잡아 빼려고 해도 고기의 냄새가 자신을 꽁꽁 묶어둔 듯 했다이윽고 고양이 비슷한 것이 건넨 제안은사리 분별 안되는 어린 표범에게는 정말이지 물마시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날 따라온다고 하면 이걸 줄게.”

 

밀레시안이던, ‘투아하 데 다난이던 모두가 똑같이 배울 중요한 한가지가 있다.

 

[낯선 사람이 뭔가를 준다고 해서 따라가선 안 된다.]

 

하지만 이 작고 어린굶주린 어린 것이 그런 것을 알 리가 만무하다희고 작은 표범은 눈 앞의 파란 눈의 것이 하는 대로 고개를 아래 위로 끄덕였다.

 

그래!”

 

온 얼굴을 이상하게 구기는 파란 눈의 것의 얼굴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흰색 표범은 눈 앞의 만찬을 즐기는 것에 완전히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에일.”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검은색으로 온 몸을 휘감은 자그마한 소녀의 옷은 언뜻 상복과 비슷해보였지만 화려한 보라색의 레이스로 치장되어있다머리를 잡아 맨 리본도가느다란 팔목에 휘감긴 금속의 팔찌도 선명한 보라색으로 온통 존재감을 흘려내고 있었다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눈을 사로잡는 보라색은흰 피부와 검은 머리칼 사이에서 빛나는 그녀 자신의 눈동자다.

 

그냥비오니까 옛날 생각.”

네 언니였던가그 분?”

언니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지만대충 맞네.”

곧 왕성에 들어가야 해너도 옷은 갈아입어야지기껏 머리 염색도 다 끝냈잖아?”

 

사근사근 건네오는 소녀의 말에 여자는 온통 인상을 구겼다치렁치렁한 드레스 차림이 무색하게도푹신한 의자에 마구 구겨진 채로 늘어져 다리를 건들거리던 검은 피부의 여자의 마구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소녀와 같은 색깔의 안광이 깜빡였다배죽이 미소를 짓는 얼굴이 벌써부터 심상치 않아 보라색의 소녀는 곤란한 미소를 얼굴에 떠올렸다.

 

나 안가면 안돼멘디.”

혼난다?”

아아앙-.”

 

나이가 두 배 가까이 나 보이는 두 사람 중외려 키가 커다란 쪽이 작은 쪽에게 갖은 앙탈을 피워댄다자못 어색한 모양이었지만 두 사람은 익숙한 듯 했다투정을 한창 부리다가에일이라고 불린 여자는 곧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방금 피워댄 투정이 무색하게 옷을 차려입기 시작했다보라색 소녀는 그 옆에서 드레스의 끈을 잡아매주는 등 시시콜콜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곧 붉은색과 짙은 회색으로 된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자는 자신의 드레스 색과 같은 색의 붉은색 귀걸이를 착용하는 것으로 옷을 갈아입는 것을 끝냈다문득 목에 바짝 달라붙은깃털로 장식된 목걸이를 그녀가 더듬자 보라색의 소녀는 까치발을 들어 그 목걸이를 유심히 바라봤다.

 

슬슬 고칠 때 됐어?”

아직 괜찮은 것 같아뭐 없어도 변신은 가능하고.”

힘들까봐 그렇지.”

괜찮대도.”

 

방긋이 웃음을 건넨 소녀는 먼저 길드 홀을 나섰다그 뒤를 검붉은 여성이 따라 나갔다밑보여선 안되지이번 사교도탑을 빼앗겨선 어디 가서 써먹지 못한다촛불 아래서 벌어지는 싸움은 만만히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몇 번을 거치면서 똑똑히 배웠다완전히 연회장에 들어서기 전송곳니를 완벽하게 감춘 흰색의 표범은 자신의 마스터의 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나 이번엔 벽에 붙어서 웃고만 있을게.”

그건 마음대로 해에일애먼 발을 밟는 것보단 낫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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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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