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숨을 흩었다. 발끝을 휘저어 찬 공기를 헤집고, 가슴을 내밀고, 앞으로. 색없이 부옇기만 한, 냉기에 언 숨이 부서지고, 또 일고. 어스름한 빛을 흘리는 달빛을 어깨에 걸친 나는 여기에 오롯이 홀로 서있어서 눈물 하나 흘리지 않았다.
주머니에 처박다시피 한 손을 주먹쥐었다.조금만 부딪혀도 냉기에 언 손은 유리조각 흩어지듯이 와장창, 그리고 우수수, 쏟아내릴 것이다. 내 살덩이와 피가 섞인 얼음조각들은 이 어스름에도 빛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얼어붙은 손을 꺼내 서로 세게 부딪히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외투의 세운 깃에 목을 쑤셔박는다.
너를 잊는 것을 꿈꿨었다. 너를 놓는 것을 망상했다. 그 모든 것이 허튼 짓이었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밤을 헤메며, 네 뒷자락 하나라도 붙들기 위해 떠도는 것이다. 발 끝이 얼어붙고, 손 끝이 바스러지고, 외투는 하등 쓸모가 없고, 이리도 날은 춥고, 내가 너를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웁고.눈을 한번 깜,빡, 감았다가 뜨면, 네가 한땀 수 놓여졌다가, 또 그대로 부서진다. 그렇다고 내가 너를 보기 위해 눈을 오롯이 감아버리면, 그 어둠에 주르륵 녹아 흩어지고야 만다. 너를 보기 위해, 에는 찬바람을 헤집으며 나는 눈을 또 깜,빡, 깜, 빡. 낡은 가로등의 불빛인 양 흐린 네가 내 눈 안쪽에서 깜, 빡, 깜, 빡. 그 곳에서, 내 가슴 안에서 너는 봄꽃 흐드러지듯이 웃고있어서, 아 내 사랑스러운 사람아. 너는 내 다시 없을지도 모를 봄이었는데 어찌 나는 이리도 찬 겨울을 헤메고 있나. 어째서 나는 바람에 베이며 따스한 당신을 찾아서 발을 옮기고, 또 옮기고 있나.
도타운 외투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내 목을 거북이처럼 구겨도 쓸모가 없다. 네가 없어 춥다. 네가 없어 서럽다. 네가 없어 그저 시리다. 네가 없다. 그것만으로 내가 이리도 망가져 여기저기 떠돌며 네 꿈만 꾸는 것이다. 어째서 너는 내 곁에 없느냐고, 어디로 갔느냐고 우짖어도 네가 없다. 피가 맺히도록 외쳐보기도 했다. 짐승처럼 짖으며 너를 찾아보기도 했다. 너를 찾을 수만 있다면야, 내 손이 다 부르트고 내 목이 다 쉬어 갈라져도, 아니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다니더라도, 내가 너를 찾을 수만 있다면야 그것이 하등 무슨 상처가 된다는 말이냐. 내가 너를 찾을 수 있다면야 그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이냐.
그것이 당신이 내게 안겨주었던 한껏 흐드러진 봄날같아 그 모양을 보며 울었다. 그 모양을 보며 웃었다. 눈물대로 굳어버린 내 얼굴의 두줄기 얼음이 투두둑 부서져 바닥에 흩어진다. 살점이 뜯어지는 느낌이 난다. 내 비참함이 추위에 얼어 흩어지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또 나는 당신을 찾아 몸을 일으키고, 여기를 헤메고, 저기를 헤집고, 발끝을 휘청이고, 당신을 떠올리며 웃다가, 또 울다가. 내 어리석음에 당신을 잃었느냐고 자책하고, 왜 나를 두고 떠나갔느냐고 당신을 원망하고, 이제는 가슴도 얼어붙었는지 건드리면 와르륵 무너질 것 같이 차다.
내 봄날, 내 아침, 내 향기로운 꽃, 내 소담스런 사람아, 아니, 그 모든 말을 갖다붙여도 소용이 없는 내 사랑하는 사람아. 내 가슴이 다 에도록 당신을 찾는데, 가슴에 눈물이 엉겨붙어 부서지는데, 이리도 추운데, 갈라지는 내 손 한번 부여잡아주지 않고 당신은 예 어디를 헤메고 있나. 하다못해 당신 있는 곳에 발자국이라도 남겨라. 그대 헤메는 곳에 눈물로 얼음꽃이라도 피워라. 내 이리 붉은 길을 피우고 다니는데 당신은 왜 나를 찾지 못하나. 혹은 찾지 않는 것인가. 내 그대야, 내 사랑아, 내 당신아, 내 하나밖에 없는, 아아. 이름 잊지 못할 나의, 무엇.
이제 내가 당신에게 매달려 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그대야, 눈 앞에 없는, 이 어두운 추위에 하얀 수탕나귀 타고 떠나고 있을 나의 나타샤, 내 손발이 다 얼어 부서져도 상관이 없으니 그대가 날 찾아주기만 한다면 여한이 없다. 아니 찾지 말아라. 그냥 그 자리에 서있기만 해다오.그저 내가 당신을 찾을 때까지 새하얗게 빛나는 비석처럼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있어주기만 하면, 내가 기어코 당신을 찾아낼 때까지 참아줄 수 있는 따스함이 한줌 남아있다면 좋을텐데. 그럼 내가 당신을 찾으면, 내 갈라진 입술이라도 당신의 발등에 뜨거운 입을 맞출텐데.
'망상극장 > 미분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래와 바다의 01 (0) | 2018.08.07 |
---|---|
D.Va (0) | 2018.08.07 |
20180107 (0) | 2018.05.29 |
2016/06/05 눈썹이 없어진 이야기 (0) | 2018.04.23 |
내가 세상을 위해 이걸 입었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아줬으면 좋겠어. (0) | 2018.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