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연못은, 연못이라고 하기에는 크기가 너무 컸다. 으레 사람들이 연못으로 부르기에 다들 연못이라고 부를 뿐, 그 크기만 따져서는 연못이 아닌 호수가 더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사람들을 고집스럽게 그것을 연못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흘러들어온 외지인이 저 호수는 이름이 뭔가요, 하고 묻기라도 하면 그들은 저건 연못이야, 하고 핀잔을 툭 주고는 더 이상 말도 않고 휘적휘적 가곤 했다.
연못보다 작은, 진짜 연못은 물, 로 불렀다. 그들에게 연못보다 작은 것은 연못도 아니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붙이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눌러앉은 그것은 어그러진 기준임에도 어색함조차 없다고, 설명하기조차 힘든 호수는 연못이라 이름 붙여져서, 이름도 없는 연못이 되어가고 있다. 아주 평범한 이곳에서 연못의 존재는 비일상을 상정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비일상이라 하면 나도 만만치는 않았다. 나는 외지인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외지인이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흘러들어와 오래도록 이 마을에 머물렀다. 하지만, 바깥에서 스며든 어머니는 그 마을의 사람이 될 수 있을지라도 나는 언젠가 이 자리에서 풀려나갈 실오라기 같은 존재였다.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품어주었지만, 자란 뒤의 떠난 나는 내가 다시 내 발로 돌아올 때까지 외지인이라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외롭게 자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 마을에 가진 기억은, 마을에 다닌 것보다 동네 할미들 품을 돌아다닌 것이 더 많았다. 할미들은 마을에 얼마 없는 작은 아이를 싸고돌았다. 치마폭에 싸여 있던 나는 어느 때는 우리 어머니보다 동네 할미가 더욱 어머니 같았다. 도시물 먹은 어머니는 흙빛으로 손을 물들이는 때가 많았고, 집에 돌아오면 누워버리기 일쑤였다. 피로한 어머니 대신, 나는 읍내의 학교를 다녀오고 난 뒤에는 늘 할미들의 품에 안기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이상하다 여기지 못했다.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기억속이 할미들은 갈라진 손등과, 흙냄새와, 손톱 밑에 까맣게 끼인 흙때로 기억에 남아있다. 사실 할미들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햇살이 그녀들의 이마에 깊은 주름을 팠을지 누가 아는가. 사실은 젊은 이였을지 누가 아는가.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할머니, 할머니, 하며 쫓아다녔고 그들은 그냥 나를 들어 안고 품에 품어주었다. 그 미소가 다시 없이 푸근했다.
할미들은 속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나씩은 품고 있었다. 할미들 품을 돌아가며, 돌아가며, 몇 번이고 귀를 기울이다 그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고 옷섶을 잡고 졸라대면 할미는 젊었을 적 일이었지, 하며 저 먼 어딘가로 시선을 던졌다. 그 젊었을 적이, 자신의 젊었을 적인지 혹은 그 누군가의 젊었을 적인지는 입을 대지 않았다. 으레 그래왔기 때문에 나는 익숙한 자세로 할미의 품에 안겨 입에 사탕을 물고는 했다. 그럼 할미들은, 조곤조곤 시간을 되씹으며 애정 어린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오랜 시간동안 눈앞에 선하게 그려주던 기억은 날이 갈수록 온전히 내 기억이 되어가는 듯이 생각되었다. 하지만 어느 기억이든 흐려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기억 너머로 사라져 가는 것, 귀퉁이 버석버석 으스러져 가는 것,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이 문드러져가는 기억들 사이에서 나는 연못의 이야기를 유난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래된 무엇인가가 늘 그렇듯이, 그 연못은 건드리면 바삭바삭 부서져 내릴 것 같은 푸르스름한 이야기를 안고 있었다. 물빛인지, 아니면 하늘빛인지 모를 푸른색으로 물들인 연못은 그 위에 구름 몇 개를 띄우고 잔잔히 있었다. 그녀는 그 잔잔함 위에 동그란 돌을 던지고, 퍼지는 동심원이 어디까지 퍼져나가나 찬찬히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대뜸 던지는 물음은 엉뚱했다.
연못에는 뭐가 살고 있을까?
발끝으로 찰방찰방 물을 튀기며 한숨같이 묻던 그녀는 일주일 뒤 팔리듯이 시집을 가야했다. 아득한 눈으로 연못 너머의, 몇 개고 몇 번이고 넘어가야할 재를 세며 그녀는 내게 물어왔었다. 그럼 나는 무슨 실없는 소리냐며 웃음을 짓고, 그녀는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다시 쳐다보며, 말해봐. 연못, 우리 연못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하고 묻는 것이다.
같이 자라온 나는, 내내 함께 붙어 다니던 우리는 이 질문을 몇 번 하고 몇 번을 대답했던가. 도대체가, 몇 번이고 주고받는 그 대화가 질리지도 않는지. 나는 슬며시 생각해보는 척 하다가 대답하는 것이다. 이 대화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듯이 잔뜩 귀찮은 투로. 내가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연못이니까 산신령이 살 거야.
원하는 대답을 들은 그녀는 슬쩍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여 나를 쳐다본다. 유난히 그 얼굴이 우울해보인 것은, 하고 생각해보다가, 에잇, 쓸데없는 생각이지 하고 벌레를 쫓듯 고개를 휙휙 저으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서는, 그녀는 또 방긋이 웃는다. 그 미소가 반가워서 좋다. 그 미소는 변한 적이 없다. 기억 속에서 빛이 바랠지언정 그 미소는 변하지 않는다.
여긴 산이 아닌걸.
그럼 나는 콧방귀를 뀌고는 올라있던 돌덩이 아래로 뛰어내린다. 발밑의 흙은 한참동안 계속되어버린 가뭄으로 팍팍하다. 입 하나 줄이겠다고 내보내는 그녀는,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나는 툴툴 대답하는 것이다. 괜히 그런 거나 물어본담? 이제 곧 못 볼지도 모르는데, 하고 결국 생각해버린 나는 잔뜩 골이 났다. 평소보다 더 독하게 말을 뱉고는 뒤를 돌아가 버렸다.
아님, 산신령님들 집합소겠지. 온통 재뿐이잖아. 전부 모여 마작이나 하시라지. 가자.
내가 버럭 소리를 질러 재차 그녀를 부를 때까지, 그녀는 또 오래오래 연못을 보고 있었다. 가뭄에 쪼그라든 연못은 마을사람들이 퍼다 써서 쪼그라들었겠지. 그래, 입 하나 줄이라고 멀리 가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 못 건넬망정 퉁명스레 이야기한 것을 나는 후에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연못으로 몸을 던졌다.
결혼을 할 날 새벽이었다. 몰래 그날 신을 꽃신을 손에 들고 그녀는 허겁지겁 흙발로 뛰어갔을 것이다. 신발 바닥에는 흙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 알려준 것이었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듯이 신발코를 마을 쪽으로 돌려놓고, 내가 자주 앉아있던 그 바윗돌 위에서,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연못에 그녀는 꼴깍 몸을 던졌다. 허겁지겁 뛰어 도착한 연못의 돌 위에는 가지런한 꽃신, 손대면 이제 막 벗은 듯 따스함이 느껴질 것 같은, 꽃신과, 산신령들에게 화투 가르치러 간다는 정갈한 글씨만이 남아있었다. 남기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 그녀는 그 추위에 곱아가는 손으로 눈 위에, 봄이 오기도 전에 사라질 글씨만 남겨놓고 갔다.
꽃신을 남겨놓고 간 아이가 꽃신을 두고 간 곳은 꽃이 필 수 없는 돌덩이 위였다. 눈 위에 손으로 그려놓은 글씨도 봄이 오자 그야말로 눈 녹듯이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이제 눈도 녹았으니 살풀이굿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미는 시체를 건지지 않았다. 그 부분에 만큼은 더없이 완강했다. 해쓱하게 패인 뺨과, 부스스한 머리로 방 안에 틀어박혀있다가도 어느 날은 훌훌 털고 일어나 마을을 돌아다니고는 했다. 실성한 듯 실성하지 않은 듯 그녀는 홀쭉한 뺨으로 비실비실 미소를 짓고는 했다. 하지만 그 눈은 번쩍번쩍하니, 사람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제 딸 손대지 말라는 짐승 같다고 수군거리는 말도 심심찮게 들렸다.
결국 나선 것은 마을 제일로 나이가 많은 할미였다. 여보게, 자네 딸 춥지 않은가. 겨울에 바로 건져주지 못한 것은 미안하지만, 이제라도 데려와서 땅에 재워줘야지. 조곤조곤, 입을 오물대며 이야기하는 할미에게 어미는 심기 불편한 것을 드러내기 힘들었지만, 흉흉한 기운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녀가 치맛자락을 꽉 쥐고서, 손가락 마디마디 하얗게 번지도록 꽉 쥐고서 간신히 내뱉은 말은 무척이나 유했다.
제풀에 가르치다 지치면 올라오겠지. 제까짓 게, 에미한테도 이겨 못한 게 누굴 가르치남.
그 말만 툭 던지고 뒤돌아 성큼성큼 나가는 어미를, 아무도 불러 세울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누군가가 한두마디 불평을 늘어놓으려고 했지만 곧 입을 꾹 다물었다. 그 기세는 차마 붙잡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품고 있었다.
꽃신을 남겨놓고 간 아이가 꽃신을 두고 간 곳은 꽃이 필 수 없는 돌덩이 위였다. 그 자리에는 늘 꽃신이 있었다. 날이 가고, 주가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고, 계절이 가고. 비바람에 닳아빠질 즈음 되면 늘 꽃신은 새신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어미는 늘 그 자리에 꽃신을 두었다. 날이 가고, 주기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고, 계절이 가고. 꽃신이 비바람에 닳아빠질 즈음에는 장봐오는 어미의 등짐 옆에는 고운 꽃신이 달랑달랑 매달렸다.
내 딸 맨발로 돌아오진 말아야지. 또 겨울이면 어찍해.
어느 누가 그 꽃신을 왜 사오느냐 눈치 없이 물으면, 주름진 눈가를 착착 접으면서 어미는 웃음을 지었다. 한숨 같이, 바람 같이, 흘러가며 그렇게 대답하는 말에 싣는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던가.
가슴 한 켠이 아릿하도록, 볼 때마다 검버섯이 피는 손등과 눈가와, 주름져 닳아가는 어미는 자신의 아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눈물 나도록 젊은 날의 그와 흡사했다. 더없이 쓸쓸한 눈빛으로, 하지만 더없이 사랑하는 눈빛으로 자신의 아이를 읊을 때면 나조차도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을 겪었다. 겪었다고, 검버섯이 피는 할미는 내게 이야기를 했다. 그런 말을 하는 할미의 눈가에는 글썽글썽 눈물이 맺혀있을 때가 많았고,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으레 울었다.
지금 나는 연못에 와있다. 할미들은 많이도 갔고, 이제 나는 할미들에게 아주머니, 하고 불러야할 나이가 되어서야 이 마을에 돌아왔다. 하지만 어렸을 적의 기억이란 그리도 오래오래 남아있었다. 나는 호수 같은 연못인지 연못 같은 호수인지 나는 그것이 품은 이야기가 눈물 나도록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내키는 날엔 바늘 없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며칠을 몇 날을 거기에 앉아있었는지. 머리가 굵어져도 풀벌레 개구리 숨죽일 줄 모르고 왁자히 떠들어대는 연못가에서 나는 몇 시간이고 미친놈처럼 떠들어대었다. 사랑하는 친구야 너는 어떻게 지내웁고 있느냐, 연못에 죽은 처녀야 너는 아직도 화투를 치고 있느냐. 비일상의 세계에서-일반적인 상식의 세계와 줄을 그어 놓은 듯한 연못가에서 난 계속 중얼중얼 무엇을 하였던가.
시간을 줄줄 쏟아 내다보면 나는 갖가지 생각만 둥실둥실 떠올렸다.
꽃신을 신고 쪽을 찌고 고운 신부복 차려입고 가채를 올리고 연지곤지 찍고 나면 그녀도 고와서 참으로 환했을 것이다. 싫은 이에게 시집을 가도 꽃단장하고 피어나야했을 그녀는 참담하게 아름다웠으리라. 부서지는 마음을 또닥또닥 분칠로 덮으며 그녀는 방긋이 웃었으리라.
뛰어든 그녀와 꽃 같은 그녀가 어느 쪽이 옳은가는, 꽃신을 신고 뛰어든, 혼자서 몰래 할 수 있었을 꽃단장을 하고 떠난 그녀를 위해 판단하지 않았다.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사랑받고,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더냐. 나이가 이쯤 된 후에도 나는 아직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조차 배우지 못하였다. 단지 내가 해야 할 것은 아무도 위해주지 않는 그녀가 돌아올 길을 위해, 사랑받았던 그를 위해, 이제 아무도 얹어놓지 않는, 바윗돌 한 켠에 꽃신 한 켤레를 두고 오는 것뿐이다. 당신은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고, 사랑받고 있다고, 말해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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