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얼굴에는 이제야 무언가를 만났다는 기쁨만이 충실했다. 마른 숨을 삼킨 그의 방아쇠는 귀가 튿어질듯한 굉음을 내고, 가벼운 퍼들거림만을 남기고 고라니는 붉은 피를 훌훌 뱉어내며 바닥으로 쓰러지고, 총을 거두고나서야 환히 웃는 그의 모습에 나는 오소소 소름마저 느꼈다.
다가선 고라니는 이제 경련조차 없었다. 울컥 쏟아지는 비릿한 피냄새는 산짐승을 모으니 조심하라던 아버지는 손칼을 뽑았다.
"무거우니 내장은 버리고 가자. 이미 모일 놈은 모일 계제니."
그리 말한 아버지는 덩쿨을 끊어와 옆 나무에 고라니의 뒷발을 묶고 거꾸로 매단 뒤, 망설임없이 그 하얀 털로 수북한 배에 칼을 꽂았다. 늘 벼려놓는 짧은 칼은 쉽게 고라니의 배를 갈랐다. 그 갈라진 배에서 끼쳐오는 더운 김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이 마지막 온기가 그리도 불쾌했다. 인상찌푸리는 니를 보며 아버지는 늘상 웃었다. 이제야 니 나이로 보인다, 하시며. 흔치않게 온화한 분이었다.
그렇게 배를 가른 고라니의 내장을 쏟아내고 가죽을 벗기고 아버지는 허벅다리 하나를 뚝 끊어냈다. 피맛이 비릿한 고라니의 근육은 아직도 더운 맛이 났다. 물컹한 창자를 들고 냇가로 가 얼음을 깬 찬 물에 그것을 차박차박 씻어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고기를 대충 쓱쓱 다져 불을 피우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라니의 내장에 고기를 넣고 구워 앉은 자리에서 먹던 투박한 창자구이는 짐승 비린내가 나는 조잡한 것이었지만 그것만큼 아버지를 선명하게 기억나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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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페북에 한번 올렸다가 굉장히 맘에 들었었는지 가끔 만날 때마다 이게 좋았다고 넌 언젠가 글을 쓸거라고 해주는 사람이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