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5

일상극장/일기 2018. 6. 16. 18:08

여름의 시작이었다. 나는 대개 집의 불을 켜두지 않는다. 형광등 불빛도 더운 것에 한몫한다는 어머니 말씀도 있지만 기실 내가 빛을 싫어하는 탓이다. 훌륭한 개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랬다. 집 안의 불을 완전히 다 꺼두고, 창문만은 활짝활짝 열어젖혀두는 것이다.


커튼 없는 방에는 그 날의 환한 빛이 비추는 것이고, 광원이라고는 내가 쥐고 있는 핸드폰 혹은 그나마도 없다. 바람이 불고 시간이 흐를 때마다 물처럼 출렁이는 빛과 고요에 휩싸여 공기를 켜는 것이다. 때로는 습하고 때로는 건조하고, 때로는 흙냄새, 나무냄새를 머금은 것을.


적막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으나 나는 종종, 부러 잠겨있는 때가 있다. 팔다리를 줄 끊긴 인형처럼 흩어놓고 힘을 뺀채로 눈을 감고, 바깥에 귀를 기울이면, 들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울려오는 소리들.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내게 스며오는 타인의 행위와 그 소음들.


나직하게 천장에서 울려오는 타인의 발걸음 소리와, 옆집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와, 밑에서 울려오는 아이들의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와..나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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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꽃양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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