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양배추 2014. 1. 26. 22:02

거만하게 왕좌에 기대앉은 젊은 왕은 비뚤어진 왕관을 고쳐 쓸 생각도 않고 자신의 권좌 아래에 무릎꿇은 자를 내다보았다. 봉두난발의 소년의 몸에서는 진한 피냄새가 풍겼고 그 지나온 자리에는 쓰러진 시체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멀리서부터 찍혀온 발자국은 붉게 묽들어 있었다.

"고개를 들라." 

왕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이를 베어 넘긴 것 답지 않은 맑은 눈과 마주친 혼탁한 눈의 왕은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어대던 그는 끅끅 웃음을 억누르고는, 자못 유쾌한 목소리로 소년에게 물었다.

  "소원이 무어냐."

  "당신의 죽음."

 망설임 하나 없이 흘러나온 나직한 목소리에 왕은 웃음을 멈췄다. 왕은 소년을 똑바로 내려다 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이 서늘하게 자신을 훑어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그를 대신해 소년에게 무엄하다 소리지를 신하들은 전부 베어넘어져 있었다. 왕은 품을 뒤져 작은 칼을 꺼냈다. 화려하게 세공된 칼은 칼집에서 나오자 의외로 시퍼런 빛을 뿜었다. 왕은 단검을 높게 들어 자신의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짜릿하게 벼려진 칼날이 이미 목덜미에 비어져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왕은 두려움 없이 말했다.

네게 상을 주리라.”